여행

공항에 가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세어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김포공항 간 적 있다. 미국 출장 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이었고 공항에서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버지를 잘 따랐던 것 같군.

그는 세관에 걸린 몇 가지 물품 때문에 예정보다 늦게 우리를 만났다. 그 물품 중 하나는 닌텐도였다. 나의 첫 콘솔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참 속상했었지.

다음은 2005년 여름이었다. 스물세 살. 그때 만나던 애인과 일본에 같이 다녀왔다. 갈 때는 비행기였고 돌아올 땐 오사카에서 배를 탔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다. 비행기가 이륙할 땐 늘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열린 써머소닉에 갔었다. 아케이드 파이어가 아직 헤드라이너가 아닐 시절이었다. 1집을 라이브로 들었다. 크라운 오브 러브가 나올 때 울컥해서 난동을 피울 뻔했지만 생각보다 차분한 일본의 관람 분위기 덕분에 얌전해졌다.

2014년, 전 부인과 나는 서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도모했다. 홍콩과 미국, 캐나다를 다녀왔다. 뉴옥과 라스베이거스에 거의 2주씩 있었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나는 쉽게 피곤해졌다. 뉴욕에서 크루즈를 탔을 때 나는 경치를 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좋은 시간을 망쳐서 미안했다. 그런데 너무 졸렸어 미안.

이렇게 여행지에서 여행 메이트가 에너지 없이 구는 것이 얼마나 짜증 나는지 다음 여행에서 알게 됐다.

2016년 여름 지금은 연락을 끊은 어떤 뮤지션과 마카오에 다녀왔다. 내가 사람에게 그렇게 표독스럽게 잔소리할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게 됐다. 여행을 다녀오면 왜 잠깐은 서로 연락을 끊게 되는 것일까. 견딜 수 없는 것은 역시 견디기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이번엔 혼자 여행하기로 한다. 6월 13일부터 7월 21일까지 독일에 간다. 왕복 티켓을 샀고 캐리어도 백팩도 마련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재택근무를 잘해볼 생각이다. 이번엔 크루즈를 타더라도 졸지 않겠어.

202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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