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뭐하고 살았나 - 10

마음 휑할 땐 음악 듣는다.

마운트 이레, 퍼플 마운틴, 빌 웰스 & 마허 샤랄 하시 바즈(이렇게 쓰는 거 맞나), 요 라 텡고, 존 홉킨스, 이민휘, 마운틴 고츠, 코난 모카신, 백현진, 넬스 클라인, 조월, 미츠키, 틴더스틱스, 피치 핏 이혼 후 많이 들은 음악가 명함을 펼쳐본다.

내 책상 위에 명함들 그중 어떤 이는 벌써 죽었다 백현진 - 여름바람 中

퍼플 마운틴 보고 싶다. 술 취해서 그랬지만 같은 LP를 아마존에서 2장이나 샀다. That's Just the Way That I Feel 로 시작해 Maybe I'm the Only One for Me 로 끝나는 앨범 트랙 목록만 봐도 슬프다.

퍼플 마운틴, 실버 주스의 데이비드 버먼 그곳에서 영원히 평안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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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행위가 빈 곳을 극적으로 채워주는 것은 아니지만 근근이 견디게는 해준다.

돈 내고 스트리밍 쓴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고 무엇이든 찾을 수는 시대. 플랫폼(애플 뮤직, 스포티파이, 유튜브) 선곡 자동화 편리할 때 있지만 내 할 일을 가져간 것 같아 속상할 때 있다. 멋대로 나를 파악하고 이런저런 맥락을 가져다 준다. 부담스럽게. 이게 내게 도움이 되나? 빈 곳 채워주는가? 차라리 모두가 기계라면. 아니다. 이상한 말이다. 기계라면. 술 먹고 글 수정하지 말자.

소울식 쓰다 알 수 없는 경로로 특정 뮤지션의 골방 데모를 잔뜩 발견하면 보물을 찾은 듯 기뻤는데. 지인의 지인의 지인이 소울식에서 갤럭시500 팬 만나 결혼했다는 이야기 들었던 것도 같고. 근데 결혼은 왜? 그냥 갤럭시500을 만나지. 여하튼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물론 이제 그런 재미는 다른 서비스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여러분 글을 읽으신다면 제 사운드클라우드 방문해서 음악 들어주십셔. 괜찮으시면 돈도 주세요. 아니면 성장할 수 있도록 돈을 주세요. 그냥 관심 주세요.

이런저런 경험이 다른 무엇으로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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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가도 부족하면 뭘 하는가? 직접 하기.

이혼 후 새로운 악기 궁금해 트럼펫 샀다. 저렴한 금빛 트럼펫. 잔 고장이 많아 처음부터 수리가 필요 했다. 분명 새 거였다구.

왜 트럼펫이었을까 트럼페터를 잘 알지는 못한다. 기흉으로 폐가 터졌을 때 관악기를 배워볼까 고민한 적 있었다. 고민만 했다. 쳇 베이커는 많이 들었지만 트럼펫 때문은 아니었다. 고운 그의 목소리 때문에. 엉망진창 인생 때문에. 호기심에.

쳇 베이커 이야기 본 투 비 블루 영화 별로다. 그런 식으로 풀어내는 삶이 이젠 와닿지 않는다. 험악한 인생살이 욕망 넘치는 삶을 살고 멋대로 하다 패착 가득한 말년, 맞아 죽거나 술에 찌들어 화를 내다 병으로 죽거나 남 탓하거나 스스로를 못 견뎌 죽음을 선택하는.

그래야만 했다면? 꺼져

마일즈 데이비스는 천재 같다. 왜냐면 얼굴만 봐도 무섭기 때문이다. 늘 싸움을 걸 것 같은 표정. 근데 이분처럼 모든 이에게 화내다 가긴 싫어. 그래도 당신 덕분에 제 귀는 즐겁습니다.

아무튼 한 곳에 치우쳐서 찌든 삶을 미화하는 방식이 싫다.

사실 난 색소폰과 트럼펫을 최근에야 구분하게 됐다. 전에는 뿜뿜한 저음 때문에 트롬본이 궁금했지만, 트롬본을 시작하기에는 흥청망청에 한계가 다가와 돈이 거의 떨어졌기 때문에. 현실적인 선택은 트럼펫이었다. 그 선택에 힘을 실어줬던 건 몇 년 전에 본 디스트로이어 공연 때 트럼펫으로 별별 사운드를 내던 JP Carter 덕분이다.

trumpeter

from www.brooklynvegan.com

이걸 어떻게 불지? 집에서 억지로 소리 내다 경찰 몇 번 왔다. 공간과 선생님을 찾아야 했다. 데이팅 앱 이외에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서비스는 몇 가지 더 있더라. (데이팅 앱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고?) 숨은고수라는 앱을 이용했다. 프렌지도 한 때는 숨은고수였는데.

트럼펫 레슨은 2020년 봄 시작했다. 목표는 그해 여름까지 기상나팔을 연주하는 것이었는데 곧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단한 악기가 아니었다. 간단한 악기는 없다.

펜데믹이 심해져 레슨을 잠깐 그만두고 쉬는 동안 몽땅 까먹고 최근에 새로운 선생님을 숨고로 구했다. 잔소리도 많고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좋은 분 같다.

이전 선생님과 가르침의 방법이 다르다. 이전 선생님은 빠르게 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주며 연주의 재미를 느끼게끔 레슨을 해주셨는데, 이번 선생님은 다른 체계를 가졌다. 호흡도 배우고 누워서도 부르고 입술 모양 하나에 신경을 써주신다.

사람마다 다른 체계가 있다는 걸 관찰하고 인정하는 일이 재미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달라진 부분은 이런 것일까? 하고 거울을 본다.

달라진 것은 없어. 수염도 덜 나고. 흉해. 그래도 잘 살자 다짐해

경험이 다른 경험으로 대체되거나 더해져 다른 경험을 만든다.

올 해엔 연습을 많이 해서 이 곡을 꼭 연주하고 싶다. 귀여워. 귀여운 것이 점점 좋아진다.

Bill Wells & Maher Shalal Hash Baz - Duck

2022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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