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뭐하고 살았나 - 12 - 2

여러 밴드를 전전하며 많은 대화가 오갔다. 기억나는 것 몇가지 추려보자.

너희가 만든 음악은 똥이야 너는 내 욕망을 짓밟고있어 마음이 가장 중요해요 솔직히 니가 만든 거 너무 뻔하고 서사가 없어 앞으론 부분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느낌을 적어봐 너희 음악은 파토스가 있어 나는 이 밴드를 하면 꼭 소중한 구두를 잃어버린 것 같아(울먹) 그냥 작곡 우리가 같이했다고 하면 안돼? 형은 맨날 재미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너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니까 너하고 같이 하고싶었어 너는 드럼만 생각하지 솔직히 여기서만 하는 이야기는데 나는 쟤 닐 영 칠 때마다 앰프 꺼버리고싶어 형이 나보다 닐 영 잘 알아? 저는 우리가 멀리 보고 가는 가족같은 팀이라 생각했어요 혼자 챙긴 저작권료좀 나눠줘 그거 얼마 안돼 평생 고래 뱃속에서 살다 뒈져버려라 이 밴드는 나 아니었으면 너희 둘 땜에 진작에 망했어 너희 지금 해체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아 씨발(단체 문자로) 이 곡 조명은 우주의 느낌을 살려주세요 형 우리 이거 이미 반복 많이 했잖아. 난 이제 이런 시간이 너무 아까워 그래도 이렇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이 믹스는 따듯한 마음이 없어요. 정이 없어요 재현할 수 없으면 음악은 가치가 없어(울먹) 그래서 에밀졸라하고 이 곡이 무슨관곈데요 아 그걸 보면 알지 왜 몰라요 우리는 이 모든걸 같이 했어 우린 한 팀이야 사람이 왜 그렇게 차가워요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지금 보면 재미있지만 당시에는 문장마다 마음을 때리는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한 장문의 글을 얼마전 발견했다. 2006년 나에게 해 준 누군가의 정성어린 충고가 지금봐도 인상적이어서 남겨둔다.

그의 말

노래를 만들 때 어떤 동기에 의해 만들게 되었는가? 단순한 악상의 발현인가 아니면 성스러운 현상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예술성을 지닌 공연- 에 대한 누미노제인가? '부르기 위한 노래'를 만들었는가? '들려주기 위한 노래'를 만들었는가? 아니면 단순히 남과 나를 구분하기 위한 장치였는가?

이는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하고 공연을 하고 관객들 앞에 서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아니면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거짓을 이야기 하는 사기꾼인셈이다. 무의미하고 모호한 과정들을 통해 만들어 낸 우연의 작품들이 과연 너희의 의도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진실해야 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하며 도망가지 말아야 한다.

-

인간은 욕망 덩어리. 각자 속은 알 수 없고. 원하는 것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겐 따듯했고, 누군가에겐 차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팀이 좋고 좋은 팀을 하고싶다. 밴드를 하며 음악도 많이 듣게 됐지만 사람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고통스러웠지만 조금 더 고통스러워도 괜찮지 않을까 해

문장 너머 행간을 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능한 표면만 보고싶다. 가능한 답이 없으면 없는대로 늦으면 늦는대로 그리고 지치면 떠날 것이다.

그리고 P에게. 또 다른 사람 모두에게. 나는 여전히 재미있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해. 재미있는 사람하고 찬찬히 오래 살고싶다.

여전히 이혼 전 이야기로 끝나네.

2022년 4월 7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