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뭐하고 살았나 - 13
12번째 글을 작성하고 뭐하고 살았나 모르겠다. 그냥 바빴던 것 같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몰라. 녹음, 합주, 트럼펫 연습, 일, 집 더럽히기 그리고 관성적 과도한 소비. 모니터 스피커와 안경테 3가지를 주문했다. 또 거의 매일 마셨다. 블루문과 소주 블루문과 블루문 칵테일 블루문 들으며 블루문 캔 접으며 블루문을 마셨군. 블루문 블루문 블루문 외우면 블루문은 이상한 단어가 된다.
안경테를 왜 3가지나 주문했을까. 비싼 물건 사면 마음에 안정감이 생긴다. 큰일이다. 이러다 파산하게 될까. 몇 달 전 넷플릭스에서 조앤 디디온의 초상이란 다큐멘터리 보고 급작스레 그녀의 책을 주문했다. 아직 열어보지 못했군. 삶을 대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변방에서 관찰하는 듯 한 태도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면 아마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근데 꼭 가까이서 봐야만 할까.
여하튼 나는 그녀의 흔적을 인터넷에서 찾아다니며 그녀가 쓴 CELINE 안경에 푹 빠졌다. 그래서 CELINE 아세테이트 안경테를 마련했지 물론 메탈로 된 안경테가 자주 흘러내리기도 했거든! 핑계고 어쨌든 내돈내산 물건 막 쓰는 버릇. 선물을 막 대하고, 장비를 거칠게 다루고, 노트북 표면에 흡집을 내고 다니는 내 행태를 전 아내는 견디기 힘들어했다.
내 손을 거치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당신은 그게 꼭 당신을 대하는 것 같다 말했어
이런 내 행태에 CELINE 안경테도 백기를 들었다. 앞에 보기 흉한 실금이 많아졌고 (이른바 레릭화) 이걸 핑계로 안경테를 3개나 주문했다. 어때 마음이 좀 괜찮니?
조앤 디디온이 옆 집 살면 좋겠다. 그냥 가끔 인사만 해도 좋을 것 같아. 아니 이건 반대로 해야지. 내가 조앤 디디온 옆 집 가서 살고 싶다. 어쨌든 명복을 빕니다.
사랑에 빠질 때는 언제인가. 어둡고 컴컴하고 변방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은 늘 매력적이다. 꼭 내 모습의 일부 같아서 그 모습을 같이 갱신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다. 그건 그냥 다가온다. 진력나고 후회하고 다시는 음악이나 시 같은 건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가도, 반복하기 싫다가도
블로그를 만들고 이 시리즈를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것도 어떤 사람 덕분이었다. 이 글 타래 전체가 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었으면 했다. 나를 더 고백하고 싶은 마음에. 나를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스스로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던 때에 어쩌다 마주친 사람 남은 모든 걸 쏟아 잘해주고 싶다고 느꼈던 사람
그 사람이 잘 지내길 바란다. 이 제목으로 쓰는 글도 이제 그만 끝낼까 해
그렇지만 여전히 이혼 후 뭐하고 살고 있으니 꼭 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글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녹음하고 생각하고 웃고 떠들고 마시고 우울하고 기쁜 것들을 써나갈 예정이다.
삶에 변화를 주고싶다. 하지 않은 일을 해볼 것이다.
안녕
I started out in search of ordinary things How much of a tree bends in the wind I started telling the story without knowing the end I used to be darker, then I got lighter, then I got dark again Something too big to be seen was passing over and over me Well, it seemed like a routine case at first With the death of the shadow came a lightness of verse But the darkest of nights, in truth, still dazzles And I work myself until I'm frazzled I ended up in search of ordinary things Like how can a wave possibly be? I started running, and the concrete turned to sand I started running, and things didn't pan out as planned In case things go poorly and I not return Remember the good things I've done In case things go poorly and I not return Remember the good things I've done Oh, oh, oh, oh-oh Done me in
_“They were two close friends, sitting alone together.”_2022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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