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뭐하고 살았나 - 3
판결까지 2개월을 남겨두고 마음을 정하니 시간이 점점 더디게 흘렀다.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다면 뭐든 했다.
평소보다 일에 더 집중했다. 의도적으로 과몰입했고 집에서도 일했다. 회사에서의 평판은 좋았다. 빠른 피드백과 나쁘지 않은 결과물. 나는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일을 마치면 아이를 데려오고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운 후, 평소라면 쉽게 손대지 않을 드라마를 정주행하다 아침나절 잠들었다. 넷플릭스에서 하는 마약류 드라마를 거의 다 본 것 같다. 브레이킹 배드 빼고
물리적으로 세상이 점점 흐려졌다. 넷플릭스 자막이 흐릿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8월의 어느 일요일 안경을 했다. 자동굴절검사기에 턱을 괴고 풍경을 본다. 찰칵 하고 세상이 한 번 잘린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다.
계산하고 안경원을 나왔다. 안경을 쓰니 조금 취한 것 같았다. 상가 간판과 간판 사이 거미줄까지 잘 보였고, 내가 다니던 곳이 사거리가 아니라 오거리라는 사실도 그날 알았다. 세상이 너무 명쾌해서 속상했다.
갑자기 2개월 뒤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 사는 집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살림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나는 어디서 살 것인가?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하고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다.
2022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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