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뭐하고 살았나 - 5
아내와 겹치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아마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판결 이후에도, 어쩌면 이 집이 팔리고 각자 지낼 곳을 구하기 전까지는 서로 숨 막히는 상태로 살아갈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이는 어땠을까 얼마나 눈치를 봤을까. 퇴행 현상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더 엄마와 아빠에게 붙어있으려고 했고 실수를 하면 과도하게 사과했다.
판결 후 각자 살기 시작하고 아이를 재울 때, 아이는 늘 자기가 바라본 어두운 이야기를 했다. 모래 사나이가 나타날 거라는 둥, 거대한 풍경과 공포를 이야기하며 자책하고 또 울먹였다. 나는 견딜 수가 없어! 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공포의 구체적인 모습과 형태를 물어보면 아빠에게는 말해줄 수 없는 비밀이라며 입을 닫았다.
지금은 마인크래프트나 아이가 좋아하는 콘텐츠로 이런 그림자가 많이 가려진 것 같지만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유별나게 공포물에 관심을 가진다. 취향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허기워기 인형을 꼭 안고 잠드는 아이를 보면 나는 마음이 흔들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인크래프트 세계에서 다이아몬드를 캐거나 같이 지옥의 입구를 찾거나 헤어질 때 그 인형을 아이의 가방에 잘 챙겨주는 일뿐이다.
그러나 이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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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집을 내놓고, 지도를 켰고 거리를 쟀다. 가능한 곳의 목록을 만들었다. 이젠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었다. 돌이키고싶지 않았다.
2022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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