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뭐하고 살았나 - 7
바닥이 어딘지 모를 외로움이 무엇일까. 이전 글을 다시 보며 나에게 질문해본다.
중학교 때 철권을 많이 했다. 피시 통신에서 만난 사람과 친해져 3호선 라인을 타며 오락실 원정 다니고 즐거웠다. 지금은 오락실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어디든 동네에 하나씩 있었다. 갈취하고 갈취당하는 정글 속의 정글
짧게나마 철권 배틀 팀에 소속되어 저조한 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팀엔 스폰서를 자칭하는 직장인도 있었다. 게임비를 내줬다. 철권 한 판에 백원이라 그랬나. 주말을 이용해 구파발 어느 오락실 철권 기계를 대여해 오락실 문을 닫고 밤새 철권 했다.
닉네임으로 부르던 시절이었다. <파란바지>와 <변사범> 그리고 니나와 안나 란제리만 걸친 캐릭터만 좋아하며 페티시에 진지했던 대전에서 오시는 분도 있었는데 닉네임은 모르겠고 오히려 실명이 기억난다.
<파란바지>는 미남이었다. 장발에 호리호리하고 정말 파란바지 그러니까 딱 붙는 청바지만 입었는데 꼭 스웨이드 시절 브렛앤더슨 같았다. <변사범>은 언젠가 내가 치아교정 점검 받기 위한 치과에도 같이 가줬지. 치과는 수유에 있었는데 그의 집은 구파발이었다. 구파발에서 수유까지, 다시 구파발까지. 시간이 남아도나? 내게 왜 친밀하게 굴어줬을까. 친밀함보다는 심심해서 그랬지 않았을까. 오 방황하는 청소년이여
구파발 밤샘 합숙 훈련 후 귀가. 부모님 표정 험악했다. 무서웠다. 나는 바로 오줌을 지릴 것처럼 찌그러졌죠. 어디보자 흠 나도 이제 부모니까 한 번 바꿔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오줌을 이미 지렸었을 것 같다. 어쩌라구.
나는 순순히 나의 뜨거운 하룻밤을 고백했다. 여러분, 당신 아들은 사실 대전격투게임 팀에 소속됐고 스폰서도 있답니다. 미래는 모르지만, 삶이 행복해요.
앞으론 나를 기다리지 마세요. 내가 없더라도 오줌을 지리지 마세요. 라는 말은 마음 속으로만 담아뒀다.
그에게 따귀를 맞았다. 몇 가지 콤보도 더해서. 아버지가 가장 크게 화를 냈던 부분은 스폰서 라는 단어였다. 그렇게 네게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나랑 철권도 한 판 안해본 주제에. 붕권으로 아버지를 조지고 싶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가짜 밍크코트와 썩은 은갈치나 사오는 사람이 내게 그런 경고를 했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니 안된다. 아리까리하다.
만약 이해했다 해도 실제 일어난 일이 없어지진 않아. 네 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어.
이때도 바닥 모를 외로움이 나를 덮쳤던 것 같다.
청소년상담 1388(전화‧문자‧온라인 상담) 그때도 이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할까 저를 모르시죠 모르면 더 좋아요
격렬한 훈련을 같이 한 팀원에게 저 사실 집에 와서 부모님께 구타를 당했습니다. 이제 저의 미래는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의 오락실 투어도. 팀 배틀도 당분간은 참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라는 말. 하기 싫었다.
사실 그만큼은 가깝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오히려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면 무엇이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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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이혼 준비가 95% 쯤 됐습니다. 나머지 500% 같은 5%를 어떻게 채우지. 복리입니까? 뭐가됐든 무자비하군요. 두둑한 은행 돈으로 이사할 집 인테리어 고민과 살림 쇼핑을 하며 앱스토어 상위권에 있는 데이팅 앱을 다 깔았다. 틴더, 범블, 은하수다방, 글램, 아만다 등등
아무나 만나고 싶다. 아무나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있는 소리 없는 소리 털어내고 싶다. 빈 구멍을 더 넓고 깊게 파는 일.
미국이든 자메이카든 명왕성이든 북한이든 나를 모르는 사람 나를 모르는 공간 나도 모르는 체위로, 외로움을 다른 외로움으로 덜어내는 일 분명 예전에도 시도했던 일
바닥이 어딘지 모르는 외로움이 무엇일까.
내가 속한 철권 배틀 팀 이름은 속수무책이었다. 너희는 뭐하고 사니
2022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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