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뭐하고 살았나 - 8 - 2
틴더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건 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고 안양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즐거워지고 싶었다. 회사든 음악이든 사람이든 내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
긴 연애만 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 연애도 섹스도 많이 할 생각으로 콘돔 100개 주문했다. 나중에서야 콘돔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알고 대부분을 버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 태어난 후 정관수술이나 할 걸. 갑자기 즐거운 섹스가 어떤 것인가 곰곰 생각해본다.
여러 데이팅 앱 중 틴더는 진입장벽이 낮았다. (아만다는 사진에서 2번 탈락하고 지웠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올리고 헛소리를 소개로 올리고. 어디보자 지역은 맥시멈으로 두고 나이도 100살까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떠들고 놀고 싶었다. 개발자의 경력을 살려 자동 넘김 스크립트를 만들고 회사에 출근했다.
덕분에 여러 사람과 대화할 순 있었다. 남성과 매칭이 되면 대부분 바텀 or 탑을 물어봤다. 남자와 아직 키스 플러스알파밖에 못해봐서 뭐가 좋을지 고민은 잠깐 했지만 부담스러웠다. 이케아 소파조립하는데 같이 조립해주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쉽다. 소파 조립하기 너무 힘들었거든. 조립하고 보내드릴걸.
나를 이용하세요. 너를 이용하고 싶어요.
여성 매칭의 대부분 비트코인 투자를 권하는 홍콩 시위를 몹시 증오하는 중국인이 많았다. 아니 그럼 틴더는 남자 하나, 여자 하나에 나까지 셋이 하는 앱인가?
남자를 제외하고 스크립트도 꺼버렸다. 속도는 느렸지만, 가끔 매칭되면 서로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고 영원히 헤어지는 놀이도 했다.
모든 놀이는 종종 지겨워지는 법
안녕하세요 놀이 금세 진 빠졌다. 어쩌다 대화가 이어져 식사 자리로 이어지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주체가 나일 때도 있고 상대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늘 갑작스러웠다.
몇 사람과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기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 참 많다고 생각했다. 왜 자기 이야기를 할까.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답답해서 그럴까. 외로워서. 감당이 안 되어서. 아마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나는 도저히 내 이야기가 입 밖으로 안 나오는데.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그러게요 그러니까요 그렇구나 그렇겠죠 그랬군요 틴더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매칭도 사진도 아니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성욕이 큰 사람을 대처하는 것도 어려웠다. 휴먼 딜도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싫은 건 싫은 거야. 섹스를 거부했더니 바로 연락 끊은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과는 잠깐 연애 했었다. 나만 아는 선을 긋고 이렇게 말했다. 너를 좋아하긴 하는데. 너는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애인과 식사를 하며 나는 여전히 틴더를 켜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손을 까딱댔다. 내가 너무 태연했나? 금방 발각됐다. 그녀는 그때서야 이해한 것 같았다. 아. 너도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말이었니?
전혀 미안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 진심을 알아줘서 고마웠다. 내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 모든 감정이 안전했다.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을 때 발생한다.
2022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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