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뭐하고 살았나 - 9
이혼 후 2개월 만에 시작한 연애는 금세 끝장났다. 고마워요 틴더!
그녀는 내가 전 아내와 아이와 같이 만나 셋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못 견뎠다. 그건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내가 틴더를 계속하는 것도 그녀가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그렇게 서로 생각한 안전거리가 달랐고 그걸 타협할 만큼 서로 좋아하진 않았기 때문에
헤어질 때 절반 남은 라가불린 16년산 가져가고 싶어했는데 주기 싫었다. 내돈내산. 그런데 결국 나도 못 마셨어. 실수로 전부 쏟아버렸거든
그녀와 연애하며 가장 좋았던 건 그녀 추천으로 세입자를 구한 일이다. 방 하나를 빈 곳으로 두기 싫었는데 그녀 덕분에 괜찮은 세입자가 생겼다. 경제활동에 도움 줘서 고마워. 갑자기 라가불린 그냥 줄 걸 하는 생각이 드네.
세입자와 조금 친해지며 세입자가 밴드 달콤한비누의 조모씨와 동아리 선후배 관계라는걸 알았다.
세상은 좁다가 넓다가 말았다가 없어진다. 생각해보면 조모씨는 전 아내와 같은 대학 같은 과 후배잖아. 이사람 뭐야. 왜 빙글빙글 돌아. 갑자기 보고싶네. 외국에 있다는 걸 알아. 거기서 잘 지내길 바라. 건강 잘 챙기길.
조모씨는 2006년 쌈싸페 숨은고수 응모 페이지에서 프렌지 음악을 들어주고 누추한 홈페이지까지 방문해 무려 공연 섭외까지 해주신 고마운 분이다.
아카이빙 된 2006년 bandfrenzy.com
프렌지 홍대 바닥 첫 공연! (이었던 것 같다)
공연은 망쳤고 Nontroppo 듣고 무력감 들었다. 그 당시 공중캠프 장비로 어떻게 그런 사운드 뽑는지. 걔들 참 프로페셔널했다. 썬스트록 멤버 중 누군가는 우리 곡에 노래를 넣으라는 조언을 했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
우울한 마음에 무한히 제공되는 공중캠프 맥주를 졸라 마셨던 것 같다. 그 시절엔 왜 이리 자신이 없었을까
그럼 지금은? 뻔하거나 뻔뻔하거나
이야기가 멋대로 흐른다. 이 시리즈(이혼 후 뭐하고 살았나) 8번부터 타임라인 정리에 실패해서 다시 쓰거나 지워버리고 싶은데 그건 싫다. 실패해도 그냥 노출하면 어때. 사람 참 많이 변했다. 게다가 처음부터 훑어보니 막상 이혼 후 이야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톤을 좀 바꾸고도 싶고.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을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니?
다시 세입자 이야기로 돌아가서 세입자는 젊고 재능 있는 친구였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우엉남이 하는 것과 비슷한 음악을 하며 귀여운 로맨스 영화도 찍고 미(소년)연시 게임 회사에서 연출을 담당하는 사람. 묘한 밸런스를 느꼈다. 그는 요즘 제주도에서 지낸다는군. 그가 영화도 음악도 계속 했으면 좋겠어.
어이 우엉남. 설거지 많이 시켜 미안하다. 종종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너는 특별한 타이밍을 가졌어.
다시 세입자가 되고 싶다는 말 고마웠지만 미안 난 이제 사랑하는 사람하고 살고싶어
2022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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